계산뇌과학 겨울학교를 마치며
최근 카이스트에서 한국 계산뇌과학 겨울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보았다. 한국 계산뇌과학회는 나의 은사님이신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의 김승환 교수님께서 창립하신 학술 조직으로, 오래전부터 계산뇌과학 겨울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젊은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뇌와 신경과학에 대한 관심을 널리 알려왔다. 첨단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되는 강연이기 때문에, 운 좋게도 회사의 재정 지원을 받아 겨울학교에 참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겨울학교는 총 4일 동안 운영됐다. 카이스트의 정문술 빌딩 강당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국의 유명한 신경과학 연구자들과 교수님들이 모여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에게 연구 동향을 소개해 주었다. 이번 겨울학교의 테마는 인공지능과의 연관성이었으며, 인간 및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는 교수님들도 있었지만, 주로 시뮬레이션과 모델링 기반의 연구가 소개되었다.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의 이상훈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신경, 계산, 정신 활동의 관계와 연구 계획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후 정재승 교수님께서는 계산신경과학의 역사를 심도 깊게 다루어 주셨고, 백세범 교수님께서는 진화의 관점에서 두뇌의 생물학적 복잡성을 설명해 주셨다. 특히, 백세범 교수님의 강의에서 등장한 인공지능 및 기계학습 연구의 핵심 가정인 “백지 상태(Tabula Rasa)”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이 인상 깊었다. 선천적인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Nature vs Nurture), 이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한편,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의 교집합에 초점을 둔 이상완 교수님의 강의도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이전에 면담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면담을 진행해 주신 바가 있다. 다만, 그때 내가 일부 무례한 질문을 했는지, 또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면담을 진행해 유의미한 대화가 오가지 못해 후회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완 교수님은 내가 동의하는 매우 중요한 연구 방향으로 나아가고 계신 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연구 지도를 받아보고 싶지만, 연구실에 이미 많은 학생이 있어 어려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을 융합적으로 연구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수한 연구 대학에 포진되어 있다.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곳은 크게 CALTECH, MIT, Oxford, UCL, Columbia 대학교, 뉴욕 대학교, TU 베를린, Max Planck Intelligent Systems, University of Zurich, 그리고 KAIST의 Center for Neuroscience-Inspired Artificial Intelligence 등이 있었다. 이들 중 한 곳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것도 훌륭한 계획이라 생각된다.
이번 겨울학교에서는 신청자의 배경에 따라 팀을 배정받아 조별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백세범 교수님께서 발표해 주신 문제는 두뇌에 있는 뉴런 중 특정 각도에 반응하는 세포들에 대한 시계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뉴런의 특성(Orientation Map)을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리 팀은 신경과학 배경의 3명, 수학 배경의 나, 그리고 최연소 참가자인 고등학생 1명으로 구성되었다. 신경과학 배경의 대학원생이 팀장을 맡아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정답을 맞추기보다는 명확한 논리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주요 가정을 세우게 되었다:
- (주장 1) 각 뉴런은 평균적으로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고유의 특성을 지닌다.
- (주장 2) 각 뉴런의 자극에 대한 고유의 평균적 특성은 주기성을 띤다.
- (주장 3) 각 뉴런의 각도 자극에 따른 평균적인 발화 패턴은 (1)선호하는 각도 $\theta_0$와 (2)자극에 대한 민감성 $I_0$, (3)오차항 $\text{offset}$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주장 4) 각 뉴런이 발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 분포는 지수 분포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1)고유한 𝜆 파라미터를 지닌다.
이 가정들을 바탕으로, 탐색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V1 뉴런들이 자극에 반응하는 고유한 특성을 발견했다. 극좌표계에서 세포들의 자극 각도에 따른 평균 발화량을 분석한 결과, π의 주기성을 띠는 패턴이 나타났다. 이 특성을 반영하여 발화 패턴의 curve fitting을 위해 샘플 데이터 구간 [50-350]s와 테스트 데이터 구간 [400-700]s에서 각 뉴런의 발화 특성을 주기가 π인 삼각함수로 가정했다(주장 3). 모델링 수식은 다음과 같다($i$는 cell index):
\[N^i_{during\ 300s}(t)=I^i_0\cdot \cos(2(\theta-\theta^i_0))+\text{offset}^i\]우리 팀은 문제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우리는 각자 시간을 쏟아 문제 해결에 몰두했다. 특히 첫날 밤에는 자기 소개를 하며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고, 이후로도 매일 계획을 수정해가며 작업에 집중했다. 과제 발표를 앞두고는 오랜 시간을 할애해 준비했고, 이를 통해 Colab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가이드 페이지도 완성하게 되었다(링크).
드디어 겨울학교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했던 내용을 차분하게 발표했다. 기초적인 논리와 비판력을 바탕으로 후회 없이 발표를 마쳤다.
놀랍게도, 교수님들께서 우리 팀의 발표와 조별과제 수행 내용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 우리는 운 좋게도 조별활동에서 1등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좋은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팀원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역할에 보람을 느끼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전략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좋은 성과는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한 결과로 따라온 것이다. 우리 팀은 자부한다; 비록 1등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을 것임을. 마지막으로, 이번 겨울학교의 최연소 참가자이자, 우리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방희연 학생이 내게 써준 편지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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