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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의식과 인간의 심리적 경험에 대한 궁금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포항공대에 진학해 생물학과 물리학을 거쳐 수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결국 그 질문의 연장선에 있었다. 사이버네틱스와 인지과학을 탐구하면서, 내가 품은 의문들이 기술과 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를 더 넓은 차원으로 이끌었고, 의식에 대한 논의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가고자 한국의식과학학술회(KACS)에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하지만 학문적 탐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는 학계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식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제27회 의식과학연합학술회(ASSC)가 도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을 결심하게 되었다.

비록 나는 학생 신분이 아니기에 일반 회원으로 등록해야 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도쿄 여행까지 함께 계획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학생일 때의 혜택들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교수님들이 학회 참가비와 여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고충도 공감하게 되었다.

2024/06/29

출국

항공편은 점심 후 이른 오후 출발이었다.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은 참으로 깨끗하고 웅장했다. 새로 지어진 시설답게 잠시 쉴 수 있는 공간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까지 다양한 부대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행기 줄에 서면서 보니, 한국에서 도쿄로 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인 여행객들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한국을 여행하고 귀국하는 길이겠지. 나는 내가 머무를 도쿄 우에노 역 주변에 대해 알고 싶어, 번역기를 이용해 가까운 커플에게 질문했다. 다행히 남자친구로 보이는 분이 친절하게 번역기를 돌려가며 여러 장소를 추천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한 후, 다시 출국 대기 줄에 섰다.

인천 공항 도착 후 찍은 첫 사진.
도쿄로 가는 비행기 줄.

공항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발견한 조형물이 있었다. 그 조형물은 내부가 전부 거울로 되어 있어, 빙글빙글 돌면 마치 무한한 공간 속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 내에 설치된 조형물.

우에노의 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저녁 무렵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은 도쿄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잘못 타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우에노 역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간단히 풀고 나서 바로 역 아래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신선한 해산물 안주와 함께 맥주를 한잔하는 순간, 그동안의 갈증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일주일 치 짐을 옮겼던 터라, 그 맥주의 상쾌함은 잊을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우에노 역 밑 번화가는 활기차면서도 묘한 운치가 있었다. 몇 분마다 머리 위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음에 맞춰 사람들이 더 크게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우에노 역 밑의 거리.
사람이 엄청 많은 술집에서 시킨 안주.

내가 예약한 숙소는 도미토리였고, 1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좁은 침대를 사용했다.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지만, 7일간 머무르는 동안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항상 깨끗이 유지되어 있어 만족스러웠다. 첫날 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한 피로와 맥주 한잔에 취해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여행기간 동안 머무른 도미토리 시에스타.
작지만 아늑한 침실.

2024/06/30

도쿄대학으로 가는 길은 마치 신촌의 어느 대학가를 연상케 하는, 넓지 않지만 정돈된 느낌의 길이었다. 지친 얼굴의 학생들이 가방을 끌고 함께 내렸고, 길가에는 작은 회사들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조화로운 배치가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도쿄대학의 명물인 붉은 문, 아카몬을 마주했다. 일본에서는 입시를 앞두고 이 문 앞에서 기도하는 미신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보니, 붉은색의 문이 주는 웅장함과 강렬함이 인상적이었다.

도쿄대학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
도쿄대학의 명물인 아카몬.

위성 워크샵 1: 의식에 대한 구조적 접근

일요일 아침, 학회 시작 전 열리는 위성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도쿄대학의 아카몬을 지나 경제학부 건물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이토 홀. 이곳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조차 개방되지 않는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실제로 보안이 꽤 철저했고, 내부 건물의 세부 양식은 정교하고 예술적이었다. 특히 천장의 기하학적 구조가 수학을 전공한 내 눈을 사로잡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다각형 패턴들이 매력적이었다.

주 학회장인 이토 홀.
내부 양식이 굉장히 예술적이었다.

오늘의 위성 학회 주제는 “의식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었고,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에 관한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최근 호주의 모나쉬 대학교에서 의식 연구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면서, 일본의 저명한 의식 연구자들이 그곳에 임용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발표는 모나쉬 대학의 나오 츠치야 교수의 강의로 시작하여, 워크샵은 통합 정보 이론의 창시자인 줄리오 토노니의 강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과 미래의 연구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통합 정보 이론을 창시한 줄리오 토노니의 강연.

이케부쿠로에서 맛있는 저녁

학회가 끝나고 이케부쿠로로 이동해 주변 맛집을 찾았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해 이케부쿠로 시내를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학회의 열기 속에 시간을 잊어 오후 8시가 가까운 시간에야 도착했다. 미리 알아둔 규카츠 맛집으로 급히 향해 약 20~30분 정도 대기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인 여행자들이 앞뒤로 서 있었다. 나는 혼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묘한 동질감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규카츠는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오래된 개인 화로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과 고기의 부드러움이 인상적이었고, 잊을 수 없는 한 끼였다.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유명 규카츠 가게.
규카츠 집에서 고기 굽는 장면.

2024/07/01

위성 워크샵 2: 지각적 메타인지

두 번째 위성 워크샵의 주제는 의식 이론 중 하나인 고차 사고 이론(HOT; Higher-Order Thought Theory)으로, 메타인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학회는 도쿄대학이 아닌 와세다 대학에서 열렸으며, 번화가에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워크샵은 고차 사고 이론의 창시자인 하콴 라우의 강의로 시작되었다. 젊어 보이는 그는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학회의 분위기를 한층 밝고 유쾌하게 이끌었다. 특히, 그가 올해 9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디렉터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계의 의식에 대한 다양한 발표가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 인공지능과 인지 신경과학의 관심사와 차이점을 비교한 슬라이드가 인상 깊게 남았다. 이 발표들은 나에게 AI와 인간 의식 간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인공지능과 인지 신경과학의 비교.
즐겁게 본 발표 자료.

인생 첫 신주쿠

며칠 전, 친구에게 도쿄로 떠난다는 소식을 전했었다. 우연히도 친구는 자신의 지인 중 한 명이 도쿄와 오래된 인연이 있다며, 나에게 그녀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신주쿠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했다. 신주쿠 역에서 내린 후, 마주보는 건물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신호등이 몇 차례 바뀌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그 광경 속에서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녀도 신주쿠 같은 번화가는 자주 오지 않는다며, 나와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우리는 신주쿠에서 유명한 가부키초 거리를 걸었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나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의 거리였지만, 동시에 일본의 어두운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였다.

신주쿠역에서 내리자 마자 펼쳐진 풍경.
조금 어두워지자 더 밝게 빛나는 거리.

가부키초 거리를 지나 뒷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반짝이는 화려한 골목이 펼쳐졌다. 이곳은 ‘골든 가이’라고 불리는데, 일본이 버블 경제를 겪기 직전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청춘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간판과 건물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오모이데요코초’라는 붐비는 거리를 지나 도쿄역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헤어졌다.

골든 가이.
오모이데요코초.

2024/07/02

첫 학회 일정

첫 학회 일정은 화요일에 시작되었다. 이토 홀과 여러 건물에는 학회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들과 달리, 이날은 해가 강하게 내리쬐었고 걷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학회장 안내를 위한 표지판.
학회장 안내를 위한 팸플렛.

점심을 먹기 위해 구글 지도에서 평점이 좋은 라멘 가게를 찾아갔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자리를 안내받았고, 이 라멘집은 재즈와 알앤비 앨범 하나만 재생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대표 메뉴인 라멘은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탄탄멘 스타일로,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깊은 맛을 주는 한 끼였다.

라멘집의 플레이리스트.
맛있게 먹은 라멘.
구운 만두.

우에노 공원 산책

시간이 잠시 비어서, 학교 근처에 위치한 우에노 공원을 찾았다. 공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 더워 일본에서 유명한 코메다 커피에서 한잔하며 더위를 식혔다. 커피의 맛과 품질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우에노 공원은 곳곳에 문화재와 문화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며 마주한 절은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원 산책 전 마신 코메다 커피.
우에노 공원의 초석.
공원 안에 있는 오래된 절.

공원 안에는 국립서양미술관, 국립박물관, 도쿄도립미술관 같은 유명한 문화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했고, 그 외부는 추상적이면서도 공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술관 마당에는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생각하는 남자’, ‘칼레의 시민’, ‘지옥문’ 같은 유명 작품들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지옥문’은 그 크기와 디테일로 인해 시간이 멈춘 듯한 압도적인 느낌을 주었다.

국립서양미술관에 설치된 생각하는 남자.
국립서양미술관에 설치된 칼레의 시민.
국립서양미술관에 설치된 지옥문.

국립서양미술관이 전통적인 서양 미술의 계보를 잇는다면, 도쿄도립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입구부터 다양한 형태의 설치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 전시를 둘러보며 도쿄의 예술적 다양성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도쿄도립미술관에 설치된 조형물 1.
도쿄도립미술관에 설치된 조형물 2.
도쿄도립미술관에 설치된 조형물 3.

여러 전시를 둘러본 후, 주변에 있는 절들을 방문했다. 절들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오래된 장소였고, 그 속에서 전통적인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고즈넉한 그 공간은,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에노 공원에 있는 절1.
우에노 공원에 있는 절2.

오프닝 키노트: 준 타니

인지과학 기반의 로보틱스로 유명한 준 타니 교수님의 오프닝 키노트를 들으러 야스다 강당으로 향했다. 이 강당 또한 평상시에는 출입을 엄격하게 관리할 정도로 높은 강도의 보안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발표를 듣는 내내 예술적인 샹들리에와 벽화를 보며 감탄이 나왔던 것 같다. 데카르트에서 바렐라까지 철저한 철학적인 분석 아래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만들고 정진한 교수님의 연구를 통해 굉장히 놀라웠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정보 이론 기반의 능동 추론을 적용하는 바도 소개되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준 타니 교수님의 오프닝 키노트.

긴자에서의 환영회

첫 만찬회는 긴자의 한 호텔 로비에서 열렸다. 하루 종일 학회 일정으로 바빴을 텐데도, 모두들 정신없이 새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분주했다. 나 역시 언젠가 이 커뮤니티 안에서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 중 옆자리에 앉아 계신 교수님은 CALTECH의 신스케 시모조 교수님이었다. KAIST에서 유명한 이상완 교수님의 지도 교수 중 한 분으로 알고 있었기에, 우연히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했다.

저녁에 진행된 만찬회.

2024/07/03

도쿄대학교 산책하기

바쁜 학회 일정 중 남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일단 걸었다. 새로운 학교의 풍경을 눈에 담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쿄대학교의 건물들은 대부분 서양식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었으며, 특히 입구의 장식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건물과 가로수의 배치는 정교하게 설계된 느낌을 주었다.

도쿄대학의 풍경1.
도쿄대학의 풍경2.
도쿄대학의 풍경3.

건물들 사이사이의 작은 쉼터들조차 운치가 있었다. 산책을 하며 무거운 노트북이 내 어깨를 짓눌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산책이었다. 땡볕 아래 걸으며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학교 옆에 있는 메론 소다로 유명한 카페에 들러 잠시 더위를 식혔다. 가는 길에는 작은 신사도 있었는데, 오래된 건축물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도쿄대학의 풍경4.
도쿄대학의 풍경5.
도쿄대학의 풍경6.

그렇다고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식히기 위해, 학교 옆 메론 소다로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가는 길에 작은 신사가 있었는데, 오래된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그 고풍스러운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신사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고요하게 나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도쿄대학 주변 거리의 조형물1.
도쿄대학 주변 거리의 조형물2.
도쿄대학 주변 거리의 조형물3.

학회 일정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국인 대학원생이 있었는데, 그 분의 발표를 듣고 사진도 찍어주기 위해 발표장에 방문했다. 발표장으로 운영된 후쿠타케 빌딩은 최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지하 3층부터 지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층마다 이어지는 계단을 보니 마치 에셔의 상대성 작품이 떠오르고, 영화 인셉션의 장면들이 겹쳐졌다. 그 공간은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학회 발표장인 후쿠타케 빌딩.
아는 대학원생 분의 발표.
포스터 세션.

대학 동기 만나기

학회 일정을 마친 후, 현재 도쿄대에서 유학 중인 대학 동기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은 도쿄대 학생들에게 추천받은 곳에서 오코노미야키를 시켰다. 맛도 양도 만족스러웠고, 추가로 시킨 동파육도 입안에서 녹을 정도로 훌륭했다. 친구와 함께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미래의 계획과 꿈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마음이 맞는 친구와 자주 만나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쿄대생들이 추천하는 술집 메뉴1.
도쿄대생들이 추천하는 술집 메뉴2.

2024/07/04

학회 일정

이 날은 학계에서 저명한 교수님들이 심리철학의 기능주의적 입장에 대해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있었다. 네드 블록 교수님의 재치 넘치는 발표로 시작해, 메타인지 연구로 유명한 스티븐 플레밍 교수님과 영국에서 의식에 대한 예측 코딩 이론을 연구하는 아닐 세스 교수님께서 자유롭게 논의를 이어갔다.

평소에 나와 지인들이 즐겁게 나누던 주제들이 이렇게 심도 깊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앞으로 이 학계에서 젊은 세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찰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지게 되었다.

네드 블록 교수님의 발표.
스티븐 플레밍 교수님의 발표.
아닐 세스 교수님의 발표.

만찬회

두 번째 만찬회는 도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오타니 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학회를 통해 많은 친구들과 친분을 쌓았고, 이번 만찬회에서 그 친구들의 친구들을 소개받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참석했다. 먼저 아직 대화해보지 못했던 한국인 연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도쿄대에서 석사 과정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한 친구와는 읽은 책의 순서까지 동일했다는 우연한 공통점에 서로 놀라워하며, 선 채로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호텔 오타니에서 열린 두번째 만찬회.
학회장 입구에서의 사진.

만찬회장의 풍경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폭포와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만찬회보다도 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사람들 간의 유대감이 더욱 깊어지고 관계가 돈독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호텔 만찬회의 전경.
만찬회의 열기.

2024/07/05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에 유명한 브런치 집을 찾아갔다. 그곳은 정말로 일본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가게였고, 안에는 출근 전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나는 간단히 프렌치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하고,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와 장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우키요에는 유럽식 아침과는 대조되면서도 일본 전통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 은근한 조화 속에서 즐거운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가게 한켠에 걸린 우키요에.
정말 맛있는 프렌치 토스트.
신문을 참 많이 읽는 것 같다.

한국인 연구자 모임

전부터 알고 있던 대학원생이 한국인 참석자들을 모두 조사해 점심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모임을 기획한 분은 전날 있었던 발표 준비 때문인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모임을 주도해 예약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번 모임에서 만난 한국 연구자들의 배경은 매우 다양했다. 물리학, 마취학, 철학, 신경과학, 심리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분들이 많았고, 특히 해외에서 연구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마음과 의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인연이 이어지길 바라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장현우 대학원생 분 덕분에 만난 한국인 연구자들.

산지로 연못 산책

점심 식사 후, 시간이 남아 도쿄대학 내 산지로 연못을 산책했다. 이곳은 일본의 문학 거장 나쓰메 소세키가 자주 산책했던 장소이자, 그의 소설 산지로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도쿄대학의 바쁜 중앙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지로 연못은 놀라울 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잔잔한 수면을 보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고, 조용한 시간대라 혼자서 연못 주위를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산지로 연못의 풍경1.
산지로 연못의 풍경2.
산지로 연못의 풍경3.

산책 중에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한 외국인 학생이 연못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남아 신경이 쓰였다.

산지로 연못의 평화로움.

산지로 연못에서 나와 다시 도쿄대학의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연못의 고요함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서양식 건축물을 보니, 마치 연못이 꿈속에 있던 공간처럼 느껴졌다.

도쿄대학의 건물1.
도쿄대학의 건물2.
건물 앞에 설치된 예술작품.

시부야의 밤

학회의 마지막 날, 학회 측에서 시부야에 있는 한 클럽을 뒷풀이 장소로 대관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도쿄에서 남은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가 추천해 준 시부야의 한 바를 찾았다. 뒷풀이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바는 자수정처럼 돌 속에서 피어난 보석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칵테일 두 잔을 마시니 취기가 올라왔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숙소로 돌아갔다.

시부야의 바.
정말 맛있게 먹은 칵테일1.
정말 맛있게 먹은 칵테일2.

2024/07/06

아사쿠사 탐방

이 날은 자유시간이 주어진 유일한 날이었다. 일본인 지인과 함께 아사쿠사를 탐방했는데, 정말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붉은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절은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본당에서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기도를 하거나 사주가 적힌 종이를 뽑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길운이 나왔지만, 함께한 지인은 흉운이 나와 그 종이를 묶어두고 나왔다.

아사쿠사의 정면 사진.
아사쿠사 내부에 있는 절.
핵심 건물.

점심 식사 후에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견우와 직녀 관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다양한 주방용품부터 칼, 커피 기구 등 여러 소품이 거래되는 시장이었고,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견우와 직녀 축제 사진1.
견우와 직녀 축제 사진2.

긴자에서 쇼핑하기

지인과 헤어진 후, 긴자에 있는 문구점을 찾았다. 처음 방문한 곳은 수제 상품들로 가득 찬 오래된 문구점이었다. 그러나 가격대가 높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실용적이고 비교적 저렴한 문구류를 판매하는 곳이었으며, 건물 전체가 문구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7~8층까지 다양한 문구류를 구경하며 간단한 스케치 용품을 구매하고 나왔다.

긴자에 있는 오래된 문구점.
긴자에 있는 대중 문구점.

장어 덮밥

저녁이 되자 장어 덮밥을 먹기 위해 오래된 간판이 눈에 띄는 백화점 뒤쪽의 식당을 찾았다.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일본 현지인들도 내 뒤로 줄을 서기 시작했고, 10~20분 정도 기다린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주 메뉴는 삶은 장어와 구운 장어를 얹은 덮밥이었다. 마지막 저녁인 만큼, 나는 둘 다 올라간 메뉴를 선택했다. 장어는 삶은 것과 구운 것 모두 부드럽고 따뜻해서 한 입 한 입이 입안에서 녹는 듯했다. 특히 장어 뼈를 우린 차와 함께 먹으니 진정으로 감탄할 맛이었다. 결제를 하면서도 사장님께 일본어로 “정말 잘 먹었습니다”라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래된 장어덮밥집.
장어덮밥 메뉴판.
정말 맛있게 먹은 장어덮밥.
비가 그친 후 정말 아름다운 하늘의 풍경.

2024/07/07

안녕 도쿄

이른 아침, 숙소를 떠나 다시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워낙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라서 이번 여행이 크게 아쉽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마음속에 애틋함과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왔다. 바쁜 학회 일정 속에서 틈틈이 여행까지 하려다 보니 체력적으로는 많이 지쳤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준비하면서 마음은 더 풍족해졌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활주로를 바라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출국을 기다리며 이번 여정이 내게 남긴 경험들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지막 전철.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길의 풍경.
나리타 공항 옥상에서 보이는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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