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읽고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부제: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은 하버드 대학교 ‘법-뇌-행동 센터’의 센터장이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뇌과학자 리사 펠드먼 바렛이 쓴 책이다. 이 책은 신경과학을 복잡한 이론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내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크다. 인류학적, 철학적 통찰을 함께 다루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바렛은 인간의 뇌가 고차원적인 사고나 인지 기능을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신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의 뇌는 ‘신체 예산’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핵심 장치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음’과 ‘신체’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신체와 분리된 정신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뇌가 우리 신체와 깊은 연결 속에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생물학적 기초와 신체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frac{1}{2}$ 강: 뇌는 알로스타시스를 해내기 위해 존재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현대 인간의 조상은 오늘날의 활유어와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뇌는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흔히 알려진 상식은 ‘생각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는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없는 고차원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진화했고, 그 덕분에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은 이런 ‘상향식 진보’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우리의 뇌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바로,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 소금, 산소와 같은 생물학적 자원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조절 과정은 단순한 반응이나 반사가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한지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신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적 자원 관리와 통제를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한다.
1 강: 뇌는 하나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이 생존을 위한 본능, 감정, 그리고 이성적 사고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이성적 사고는 본능과 감정을 어제하고 통제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 내과 의사인 폴 매클린(Paul MacLean)은 우리의 두뇌가 플라톤의 마음 이론과 대응되는 세가지 계층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삼위일체 두뇌 가설’을 제안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 감정을 다루는 포유류의 뇌(변연계), 그리고 생각을 담당하는 영장류의 뇌(대뇌 피질)를 모두 포함한다. 더 나아가, 대뇌피질의 일부인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가 포유류의 뇌와 파충류의 뇌를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완전히 잘못됐다. 파충류-포유류-영장류 모두 동일한 유형의 신경세포를 갖고 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모두 동일한 뇌의 발달 과정인 “뇌 제조 계획(Brain-Manufacturing Plan)”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서로 다른 종의 차이는 오로지 뇌 제조 계획의 단계별 시간이었다. 예컨대, 대뇌 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만들어지는 단게는 인간보다 설치류가 짧고, 도마뱀은 이보다 훨씬 더 짧다.
2 강: 뇌는 네트워크다.
1강에서는 플라톤의 분류가 틀렸음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를 심장을 위한 냉각 장치로, 중세 철학자들은 영혼의 자리로, 19세기 골상학자들은 자존감이나 파괴성 같은 기능을 구분하는 퍼즐 조각처럼 생각했다. 이러한 오류는 대부분 비유(Metaphor)에서 비롯된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뇌를 네트워크(Network)로 이해한다. 약 1280억 개의 뉴런이 500조 개 이상의 연결망을 형성하며, 이 네트워크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 물질 속에서 작동한다. 뉴런들은 클러스터로 묶여 있으며, 특히 다른 클러스터들과 많이 연결된 허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브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증, 조현병, 난독증과 같은 신경정신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글루타메이트, 세로토닌, 도파민과 같은 화학 물질들은 네트워크의 변화를 빠르거나 느리게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 신경전달물질은 다른 물질의 효과를 증폭하거나 억제하기도 한다. 이 네트워크 구조를 공항과 대형 국제 공항에 비유하면, 신경전달물질은 공항의 직원이나 날씨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뇌는 에너지 효율이 높고, 작지만 강력하며, 두개골 안에 적합하게 위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대부분의 뉴런은 유연하게 연결되어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면역계나 후각, 유전학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며, 이를 축중(Degeneracy) 현상이라 한다. 또한, 뇌는 다양한 시공간적 패턴을 형성하면서 높은 복잡성을 유지한다. 신경세포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된 ‘미트로프 뇌(Meatloaf Brain)’나 주요 기능이 단순히 붙어 있는 ‘주머니칼 뇌(Jackknife Brain)’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3. 어린 뇌는 스스로 세상과 연결한다.
인간 아기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다. ‘본성(Nature) 대 양육(Nurture)’의 문제는 뇌과학에서도 중요한 쟁점이다. 뇌의 변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세부조정(Tuning)과 가지치기(Pruning)이다. 세부조정은 ‘함께 발화하면 연결된다’는 헵의 법칙(Hebb’s Principle)과 관련이 있고, 가지치기는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원칙을 따른다.
태아와 아기에게 있어서 부모나 양육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기들은 스스로 트림조차 할 수 없으며, 양육자는 아기의 신체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양육자는 관심공유(Sharing Attention)를 통해 아기에게 환경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도록 가르치며,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만의 적소(Niche)를 형성해 간다. 감각 발달과 통합에도 양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언어에 노출된 아기는 그 언어들을 구별하고 학습하기 쉬워진다. 반면, 언어 노출이 제한된 경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양육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린 뇌가 세상과 연결되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 고아원에서 양육자 없이 자란 아이들은 언어와 주의집중 문제, 정신적·행동적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체 발달에도 문제가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인간의 뇌는 ‘양육이 필요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본성과 양육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의 유전자는 적절한 물리적·사회적 환경, 즉 적소에서 뇌를 완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4. 뇌는 당신의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다.
카메라는 외부의 시각 정보를 감지해 사진처럼 재구성한다. 하지만 우리의 두뇌는 카메라와는 다르게 작동한다. 우리의 지각은 매우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지만, 종종 부정확하다. 두뇌는 감각의 단편들을 통해 기억을 조합하고, 세상에 대한 경험을 예측한다. 이때 우리의 경험은 절반은 감각 입력에서, 나머지 절반은 뇌가 만들어낸 “잘 제어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으로 구성된다. 이는 마치 뒤샹이 언급한 “관람자의 몫(Beholder’s Share)”과도 유사하다.
우리 뇌는 시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종합하여 신체 예산을 조정하고, 그에 따라 경험을 예측한다. 만약 잘못된 예측을 한다면, 뇌는 보통 학습을 통해 이를 수정한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상황에서는 예측 오류가 무시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각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생존을 위해 먼저 행동을 하고, 그에 맞춰 지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고, 따라서 법적 책임도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의 예측을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행동과 경험을 통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더 큰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5. 뇌는 다른 뇌와 함께 움직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집단을 이루어 서로 돌보고, 협력하며 문명을 쌓아왔다. 우리의 뇌는 서로의 신체 예산을 조절하면서 협력하는데, 이는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은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낫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고 친밀하게 지낼 때 더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뢰하는 동료와 관리자와 함께 일하면 성과와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다.
다른 동물들은 화학물질, 후각, 청각, 촉각 등을 통해 신경계를 조절하지만, 인간은 주로 ‘말’을 통해 이를 수행한다. 언어는 신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언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은 신체 내부를 제어하는 주요 기관과 시스템을 포함하는 신체 예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언어 네트워크는 왼쪽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이 네트워크는 자율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를 제어하는 내수용 시스템의 일부로, 결과적으로 ‘말’이 신체를 제어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정치적 관점에서 언어적 폭력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장기간 언어 폭력에 노출되면 신체 예산이 남용되어 신경계에 물리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표현의 자유와 타인에 대한 책임 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강한 상호의존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의 신체 예산을 고갈시키거나, 반대로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숨겨진 협력은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6. 뇌는 다양한 종류의 마음을 만든다.
인도네시아 발리섬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낄 때 잠이 드는 독특한 반응을 보인다. 발리와 필리핀 일롱고트 사람들은 서양에서 분리된 개념으로 이해되는 ‘인지(Cognition)’와 ‘정서(Emotion)’를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즉, 특정 문화 속에서 자라고 형성된 뇌는 그에 맞는 독특한 마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뇌가 백지 상태에서 모든 것을 환경에 따라 학습한다는 뜻은 아니다(미트로프 브레인처럼). 또한, 보편적인 인간 본성을 이미 알고 태어난다는 것도 아니다(주머니칼 브레인처럼). 대신 인간의 뇌는 다양한 마음을 구성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배선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본 뇌 생성 계획(Basic Brain Plan) 가지고 태어난다.
찰스 다윈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변이(Variation)’가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변이가 많을수록 종의 다양성은 커지고, 그로 인해 재앙이 닥치더라도 일부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변이는 인간에게 축복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본성이 있다고 믿는 것을 더 편안해한다. 마치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에 열광하는 대중들처럼, 인간을 단순히 유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마음의 가장 보편적이고 유용한 특성 중 하나는 기분과 신체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느낌이다. 이는 과학에서 ‘정동(Affect)’이라고 부르며, 유쾌와 불쾌라는 ‘감정의 톤(Valence)’과 활성화와 비활성화라는 ‘각성 수준(Arousal)’으로 나뉜다. 뇌는 끊임없이 정동을 생성하며, 이를 통해 몸의 상태를 요약하고 현재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신체적 활동이 어떻게 정신적 경험으로 변형되는지에 대한 원리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의식(Consciousness)’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또한, 이러한 정동이 문화 적응과 결합되면 더욱 복잡한 정신적 경험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다양한 정신적 경험이 형성되는 것이다.
7. 뇌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돈, 달력, 국가와 같은 사회적 현실을 창조한다. 이는 종이와 금속, 태양과 지구의 운동, 대륙과 국경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대응된다. 사회적 현실은 전쟁이나 금융시장 같은 사건을 통해 물리적 현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은 다섯 가지 ‘C’로 요약된다: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모방(Copying), 협력(Cooperation), 그리고 압축(Compression)이다.
특히, 압축(Compression)은 다른 종과 구별되는 인간 뇌의 독특한 능력이다. 대뇌 피질의 2, 3층의 연결 구조는 감각 정보를 효율적으로 압축하여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Abstraction)를 가능하게 한다. 이 추상화된 정보는 창의성을 통해 다시 풀어지며,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이 탄생한다. 이러한 추상화와 창의성은 의사소통, 모방, 협력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맥락에서 공유되고, 같은 문화 안에서 전파된다.
대부분의 동물은 특정 환경에 적응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진화한 반면, 인간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진화했다. 우리는 더 이상 물리적 세계에서 단순히 적응할 요소를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며 살아간다. 이로써 인간은 사회적 현실이라는 인위적인 적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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