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수 만 년의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왜” 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의식 현상이 생존에 어떠한 이점을 제공하는가?
본 글은 MIT Press에 기고된 Simona Ginsburg, Eva Jablonka의 “How Did Consciousness Evolve? An Illustrated Guide[1]”를 읽고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진화적으로 발생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대개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며 진화론을 부정하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반증이 불가능하기에 불필요할 것이다(칼 포퍼Karl Popper). 진화는 실험실 수준에서 검증가능한 프로세스로, 좋은 설명력과 예측력을 제공해줌에 틀림없다.
진화론은 과거 라마르크Jean-Baptise Lamark와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특정 형질이 후대에 계승되고, 자연 선택에 의해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갖는 개체를 중심으로 생존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20세기 존 메이너드John Maynard에 의해 DNA 기반의 진화적 다양성이 제기되었다. 유전자가 직접적인 leader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21세기에 이르러, 유전자보다 개체의 생태적 지위Niche를 형성하는 능동적 행위의 중요성이 알려지며, 유전자만 중요하다는 주장은 폐기된다.
진화의 역사에서 특수한 전환Transition이 발생하는 경우, 진화론의 관점이 훌륭한 설명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일례로, 왜 수중에 있던 생물체들이 지상으로, 더욱이 공중에서 자신만의 생태적 지위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마찬가지로, 왜 단일 세포에서 세포 덩어리가 되었는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개체가 어떻게 기호적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는지 등의 흥미로운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진화론에 호의적인 철학자 Daniel Dennett도 마찬가지다. 생명체의 진화적 방향을 언급하며 “generate-and-test-tower”에서 생명체 진화의 단계를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이때 첫번째는 생존 게임에 의해 선택되는 생명체, 두번째는 학습에 의해 선택되는 행동양식, 세번째는 상상을 통해 선택되는 아이디어,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문화적으로 선택되는 도구와 밈을 의미하곤 한다.
- Darwinian Creature: 무작위 돌연변이와 환경에 의해 형성되어 고정된 생명체
- Skinnerian Creature: 외부 환경에 행동을 실험하여 학습할 수 있는 생명체
- Popperian Creature: 수 많은 선택의 경우를 상상하여 최적의 행동을 미리 선택할 수 있는 생명체
- Gregorian Creature: 외부 세상에서 내부적인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생명체
- Scientific Creature: 사회와 언어적 도구를 활용하여 의사소통하고 과학적 방법을 활용하는 생명체
진화적 관점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단순한 탄소화합물 덩어리가 감정과 감각을 경험sentient할 수 있게 되었을까? 진화론적 설명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과거에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문제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했었다. 당시엔 최소한의 생명Minimal Life이 만족하는 능력들의 리스트를 생성하고, 이러한 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명체에 대한 이론적 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진화론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게 된 전환 지표Transition Marker를 활용한다[2].
마찬가지로, 저자는 의식의 진화론적 전환 지표로 무제한 연관 학습Unlimited Associative Learning(UAL)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는 과거 20세기 학습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생물학자들은 의식을 판별하기 위한 조건으로, 새로운 행동적 적응에 의한 학습가능성Learnability을 제안한다. 이는 20세기 행동주의의 시초가 된다.
20세기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학습은 총 세가지로 구성된다. 먼저, (1)시스템의 내적 상태를 변화시킬 감각 자극, (2)긍정/부정적 강화를 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억들, (3)추후 동일 자극에 대한 노출로 구성된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연관 학습은 인공적인 실험 환경에서 수행되어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으로 사장된다.
그런데, 19세기의 제안-의식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학습 능력을 평가할 수 밖에 없다-은 20세기의 행동주의적 관점을 부활시키는 것 같다. 더욱이 구체적으로 의식을 갖는 듯한 생명체들을 관찰해보면, 그것의 진화론적 전환 지표로 엄청난 연관학습 능력을 들 수 있다[2].
심리학자, 철학자, 신경과학자들이 합의한 바, 의식적 생명체들이 갖는 특성들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Binding/Unification
- Global Accessibility and Broadcast
- Selective Attention and Active Exclusion
- Intentionality
- Integration through Time
- Flexible Evaluation System and Goals
- Agency and Embodiment
- A Sense of Self
이러한 이유로, UAL 능력을 가진 유기체는, 자신의 일생에 걸쳐, 세상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제한없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여기서 제한이 없다는 것은(1)자극과 행동의 복잡한 패턴, (2)2차 학습, (3)흔적 조건화, (4)가치에 대한 쉽고 빠른 재연관의 네 가지 특성을 의미한다.
의식의 진화적 기원이 UAL이라는 관점에서, 저자는 고통의 기원을 과학습Overlearning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고기들은 주변에 위협적인 대상이 다가오면 적응적으로 피하게 되는 로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해당 대상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의 불안장애, 편집증, 신경증 등의 정신질병 또한 동일하다. 저자들은 덜 고통받고 무딘 바보보다 더 현명하고 고통받는 동물들이 더 생존에 유리하다고 이야기한다. UAL이 가져다 주는 이점에 비하면 이러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더 좋은 장점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을 위한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생존 경쟁이 치열했던 캄브리아기의 생명의 폭발(Life Explosion) 시즌이 고통의 기원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한편, UAL은 단순한 학습능력을 가진 Skinnerian Creature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상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Popperian Creature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웨스턴 스크럽 어치Western Scrub Jay는 각 음식의 유통기한을 고려해 식사 순서를 정할 뿐만 아니라, 적정한 장소에 음식을 숨기고 유통기한 내에 돌아와 섭취한다고 한다. 더욱이 음식을 숨기는 동안 다른 개체에게 들키게 되면, 다른 곳에 다시 숨긴다! 다른 개체가 숨기는 것을 몰래 관찰해 도둑질하기도 한다고 한다.
본 글의 핵심 주제는 UAL을 의식의 진화적인 전환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왜, 언제 의식이 발생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UAL을 주요 지표로 삼고 캄브리아기를 의식의 탄생 시점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몇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의식을 갖는 생명체들은 UAL 능력을 지니지만, UAL 능력을 지닌다고 과연 의식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 또한 이러한 질문을 고려했는데, UAL은 의식의 발달적 지표가 아니라 진화적 지표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의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답변은 NO!인 것이다. 접근 의식의 관점에서는 유용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 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현상학적 의식의 메커니즘과 인공 의식의 구현이 가능한지 궁금한 나로써는 꽤 실망스럽긴 하다.
UAL은 Yann LeCun의 Self-Supervised Learning 패러다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최근 Yan LeCun은 사실 대부분의 지적인 동물들의 학습 방식은 기존의 Unsupervised Learning 패러다임에 속하며, 해당 패러다임은 인지적 구조에 의한 Self-Supervised Learning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Self-Supervised Learning은 시공간적으로 불완전한 데이터의 관계에 대한 무제한적인 학습과 유사하므로 UAL과의 관련성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Model-Based RL에서 SOTA를 달성한 Dreamer V3의 경우, Minecraft 게임 내에서 도구를 제작하여 활용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었다[4]. 이 경우, 해당 Agent를 Gregorian Creature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 영상은 Dreamer v3가 순차적으로 Diamond를 캐기위해 재료를 수집하고 도구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UAL이라고 한다면 정말 끝판왕같다… Gregorian Creature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해당 모델이 의식적 경험(Qualia)을 갖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일까?
출처
[4] Mastering Diverse Domains through World Models. (n.d.). https://danijar.com/project/dreamer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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