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쉬만 교수의 젊은 연구자를 위한 조언
본 글은 하버드 심리학 교수인 사무엘 절쉬만의 “Advice for young investigators” 발표 자료를 번역한 것으로, 갓 입학한 대학원생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담고 있다.
1. 문제 고르기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며 적절한 연구 프로젝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학부생들은 과학을 지적 ‘활동’이 아닌 ‘지식 그 자체’를 배운다. 그 결과, 학부생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만 가지고 졸업하게 되지만, 그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학은 문제 해결 활동 이다. 연구자는 (1)기존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찾아내거나, (2)기존 이론을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갓 입학한 대학원생에게 좋은 문제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박사과정 동안 해결 가능성이 있는 문제 여야 한다.
2. 강력한 문제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플랫(1964)은 특정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로 ‘강력한 추론(strong inference)‘의 활용을 꼽는다. 강력한 추론이란 대안 가설을 구별하기 위한 실험 설계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직관적이고 명백해 보이지만, 많은 과학은 명확하고 뚜렷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 없이 수행된다. 많은 과학자들은 “일단 무언가를 측정하고, 그 측정치로부터 이론을 만들어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 실험 공간에서 무작위로 비틀거리며 탐색하는 것은 희망이 없다. 강한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문제를 ‘강력한 문제(strong puzzles)‘라고 한다면, 젊은 연구자는 강력한 문제를 선택해야 한다! 즉, 여러 이론을 구별할 수 있는 설명되지 않은 현상을 찾아야 한다.
3. 작은 문제와 큰 문제
우리 대부분은 당연히 큰 문제를 풀고 싶어한다. 하지만 큰 문제를 불확실한 전망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건강에 매우 해롭다. 큰 문제를 위해 수 년간 고생하는 것은 사기를 저하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서 저자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시간 규모를 동시에 설정하여 작업할 것을 권한다. 단기적으로는 (월 단위) 작은 문제를 다루고, 장기적으로는 (년 단위) 큰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크기가 아무리 작더라도 지적 성과를 생산하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효과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다양한 시간 규모로 작업하는 것은 지루함과 좌절감을 완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4. 명확하지 않은 부분
과학은 아이디어를 너무 일찍 정식화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아이디어는 표면을 조금만 긁어보지 않으면 명확하고 잘 확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종종 이론적 아이디어에 미치는 측정 과정의 영향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뇌에 수많은 지형적 지도(topographic maps)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된다. 첫째, 지도는 뇌의 기본 조직 원리로서 기능하며, 신경 연결을 최소화해 신호 전달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구조적 특징일 수 있다. 둘째, 우리가 연구 과정에서 지도 형태를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도가 자주 발견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뇌가 지도를 실제로 조직 원리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과, 연구자의 관점과 방법이 이러한 지도를 발견하게 만드는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정뱅이 탐색(The Drunkard’s Search)은 문제 해결과 정보 탐색 과정에서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행동을 설명하는 비유로,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는 취객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취객은 어두운 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지만, 찾기 쉬운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만 열쇠를 찾으려 하며, 이는 사람들이 쉽고 편리한 방법을 선호하고 실제로 중요한 곳보다 접근하기 쉬운 장소나 방법에 의존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경향은 정보 검색, 데이터 분석, 문제 해결, 심지어 과학 연구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연구자가 측정하기 쉬운 데이터나 익숙한 분석 방법에 의존할 때 중요한 정보를 놓칠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주정뱅이 탐색은 과학적 문제 해결에서 “접근 가능성 편향”(availability bias)을 상징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탐색해야 할 곳이 아닌, 찾기 쉬운 곳에서만 답을 찾으려 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지적한다.
5. 멋져 보이려고 하자 말자
모두가 멋진 방법론을 사용하여 멋진 주제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곧 그 주제와 방법론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됨을 의미한다.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관대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에게 밀려날까 걱정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이 분명 관심은 있지만 아직 연구하지 않은 문제를 찾는 것은 어렵다. 한 가지 방법은, 이론적 아이디어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아 강한 추론을 적용하기 어려운 분야를 찾아보는 것이다. 잘 정립된 이론은 백만 번의 실험에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멋 부리지 않으려면 용기와 창의성이 필요하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자. 시와 소설, 철학과 역사도 공부하고, 때때로 오랜 산책을 하거나, 세상 속 미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6. 흥미롭지만 틀린 이론을 향해
이론은 종종 틀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이론화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다. 과학이 문제 해결 활동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즉, 과학은 고정된 지식 체계가 아닌 인식론적 실천(epistemic practice)이다. 이론화의 중요한 역할은 문제에 명료함을 더해줄 관점을 형식화하는 데 있다. 비록 틀린 이론이라도, “자연의 연결점을 조각함으로써” 문제를 정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처음으로 이론을 제안할 때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는 맞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현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론은 생각의 도구(Tools for Thinkin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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