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 자연화의 함의와 한계
본 글은 김태희 철학연구원 님의 “현상학 자연화의 함의와 한계“를 읽고 정리한 글입니다.
글을 읽기 전에
인간/동물/기계의 의식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려면, 먼저 1인칭적 의식 경험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시청각적 지각, 상상 및 시간의식 등 대부분의 심적 내용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메라는 시각적 의식을 수행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우리가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카메라는 디스플레이에 순간적인 정보를 표시할 뿐이다. 이는 우리의 시각적 지각과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한 순간의 시각적 경험은 바로 직전의 시각적 경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전의 시각적 경험과 지금의 시각적 경험이 아무런 관련이 없고, 우리가 매 순간 새로운 장면을 경험하고 또 그 장면을 휘발해 버리는 셈이라면, 어떠한 의식적 경험도 유지되거나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내가 제시한 예시와 그것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엄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 100년 전에, 이러한 주관적 경험에 대한 엄밀한 분석 작업이 수행되었다. 바로 현상학Phenomenology이다. 현상학은 다양한 유형의 의식인 노에시스Noesis와 그것이 지향하는 다양한 유형의 대상인 노에마Noema가 지니는 관계를 규명하는 분야이다. 현상학 연구에서 얻은 결과물이 현재까지 등장한 신경과학 연구/의식 이론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래의 핵심 질문을 갖고 글을 읽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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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적 연구 결과는 자연주의적 태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맺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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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적 이론과 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적-자연주의 이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맺을 수 있는가?
1. 들어가며
1장에서는 인지과학자와 철학자들이 다루는 “현상학의 자연화(Naturalizing Phenomenology; NP)” 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상학의 자연화 연구 프로그램은 현상학적 연구를 자연과학의 <설명> 프레임 안으로 통합하려는 연구 프로그램이다. 의식과 관련된 문제는 크게 아래의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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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간극 문제(Explanatory Gap): 뇌의 과정에 의해서, 감각질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 _ Joseph Le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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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The Hard Problem): 뇌의 물리적 작용이 어떻게 감각 경험을 불러 일으키는가? _ David Chalmers
해당 논문에서 밝히는 핵심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다. 인지과학과 현상학의 융합 연구의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NP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Varela의 신경현상학Neurophenomenology에 초점을 두고, 인지과학과 현상학의 상호제약(Reciprocal Constraint; RC)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신경현상학은 NP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인지과학과 현상학의 융합 연구는 가능한가? NP는 이 가능성의 전제 조건이다.
2. 신경현상학
저자는 분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NP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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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izing: 현상학적 기술을 자연과학의 프레임 안으로 통합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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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nomenology: 현상학적 철학과 현상학적 심리학
신경현상학은 아래의 작업가설에 기반한 이론이다:
경험구조에 대한 현상학적 서술들과 인지과학에서 거기에 상응한느 서술들이 상호제약(RC)를 통해 서로 연관된다. NP 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이론에는 아래와 같이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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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Dennet: Heterophenome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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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Marbach: Formalization of Phenomenological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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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Gallagher: Front-loading Phenomenology
저자는 그 중에서 Varela의 신경현상학 접근이 가장 포괄적이고 수용적이며, 전도유망하다고 평가한다. 신경현상학은 마음과 의식에 대한 정합적 설명을 위해 체험들의 본성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description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학적 기술은 설명의 체계 안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경현상학은 1인칭적 자료들에 대한 완벽하고 정확한 기술이 가능하고, 수학적 모델의 형태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후설 자신이 의식 체험의 본질이 정밀하지 않은 형태학적 본질임을 밝혔다. 그러나, 저자는 박승억/요시미의 주장을 가져와 이러한 우려가 후설 자신도 열어둔 질문이거나 수학적 방법을 배제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신경현상학 기획의 성패는 다시말해 “의식 체험에 대한 수학적 모델의 실현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신경현상학의 관점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은 이제 아래와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저자는 1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2와 3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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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신경과학적 차원과 현상학적 차원을 포괄하는 수학적 모델은 정확히 무엇인가? 대체 그런 모델이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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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에서의 모델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면) 설명적 간극에 다리를 놓는 포괄적인 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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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에서의 다리를 제공한다고 전제하면) 후설의 입장과 양립가능한가? 이는 후설이 거부했던 자연주의의 일종이 아닌가?
3. 설명 간극에 다리 놓기
Varela의 핵심적 가설은 크게 세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현상적 의식 경험은 물리적 사건들로 환원 불가능하다.
2. 의식적 경험에 대한 1인칭 기술과 3인칭 연구는 상호제약 관계에 있어야 한다.
3. 현존하는 1인칭 방법들을 다듬어 현상적 의식 경험을 적절하게 조사할 수 있다.
T. Bayne에 따르면, 두번째 가설에서 이야기하는 상호제약(RC) 관계에 대해 상이한 해석이 존재한다.
1. 반성적 평형Reflective Equilibrium
2. 발견술 전략Heuristic Strategy
3. 상호 인과Reciprocal Causation
4. 생성적 통로Generative Passage
1,2는 너무 약한 해석/3은 너무 강한 해석이라고 하며, 4의 해석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생성적 통로 해석은 상호제약 관계가 현상적 상태와 신경생리학적 상태 사이를 연결하는 수학적 모델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다리 놓기는 크게 3가지가 요구된다:
(1) 경험구조에 대한 현상학적 설명들
(2) 이 구조적 불변항들에 대한 현상적 동역학 모델
(3) 생물학적 체계 내의 이 모델들의 실현
생성적 통로 해석의 관점에서 문제를 재정의할 수 있겠다:
1. 과학적 문제로서 설명 간극: 의식에 대한 현상학과 신경생물학 양자를 통합적/정합적인 방식으로 해명할 수 있는 모델을 제기하는 문제
2. 심리철학에서의 의식의 어려운 문제: 자연 안에서 의식의 지위에 대한 추상적 형이상학적 문제
(이때, 2를 해결하지 않고 1만 해결하는 것/1을 해결하지 않고 2만 해결하는 것이 가능함에 긍정한다)
재정의한 문제의 관점에서 설명 간극에 다리를 놓는 것이 성공한다는 것은 (1)현상학적 사건과 신경학적 자료들을 적절하게 형식화한 수학적 모델을 구성하는 것과 (2)피설명항(의식의 개별 사건이나 신경과학에서의 의식의 신경상관물NCC 등)이 설명항(수학적 모델)의 논리적 귀결임을 밝는 것이다.
4. 후설 입장과의 양립 가능성
자연화는 크게 (1)이념성의 자연화와 (2)의식의 자연화로 분류할 수 있다. 후설은 전자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어떤 한계 내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해당 글에서 경험학문의 정초로서 현상학적 심리학의 자연화는 긍정하지만, 초월론적 현상학은 결코 자연화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글을 읽어 보내며
현상학 자연화 연구 프로그램 -> Varela의 신경현상학 이론 -> 상호 제약에 대한 생성적 통로 해석 -> 설명 간극 문제 해소의 의미
본 논문을 읽으며, 인지과학과 현상학의 융합 연구에 대한 중요한 키워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인지과학의 철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NP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NP에서 전도유망한 이론인 신경현상학을 소개받고, 그것의 핵심 가설인 1인칭적 자료와 3인칭적 자료 사이의 상호제약에 대한 다양한 해석 방법이 존재함을 이해했다. 그 중 “생성적 통로” 해석의 입장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 1인칭적 자료와 3인칭적 자료 사이의 설명 간극에 다리를 놓는 것이 주요한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최근 사람의 행동과 심리적 현상에 대한 규범적 이론Normative Model인 Karl Friston의 Active Inference를 공부하며, 이것이 인간의 1인칭적 자료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실제로, 트위터에서 답글을 달며 친해진 Maxwell Ramstead의 작업들 중 Active Inference와 현상학의 융합 연구에 대한 철학적 입장을 밝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계산현상학. 앞으로 다음 논문을 읽고 Active Inference가 위에서 언급한 주요한 수학적 모델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다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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