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샘 역자 후기
마음의 수학자를 꿈꾸며Permalink
마크 솜즈 - “숨겨진 샘” 역자 후기Permalink
9살 무렵, 어머니께서 담임선생님과 면담하신 후 적잖이 큰 충격을 받으셨다. 내게 ADHD의 확실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특별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마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신 탓에 큰 관심을 못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임시적인 해결책으로, 나를 동네에 있는 작은 한자 학원에 보내셨다. 그곳에서 훈장님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늦은 밤까지 외로움을 달랬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도 명심보감이나 사서삼경의 좋은 글귀가 떠오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어렴풋이 스스로의 완벽에 집착과 강박을 느꼈다. 교과서에 있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컸고, 다양한 질문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아직까지도 여러 사건이 떠오른다. 지구 과학 시간, 교과서에 케플러의 법칙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기가 생겼다. 언젠가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꼭 이 법칙을 증명해내어 이해시키겠다는 각오가 선 것이다. 며칠 밤을 새며, 뉴턴 역학을 활용한 증명에서 시작해 라그랑지안, 해밀토니안 역학1을 활용한 증명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결국, 수업 한 시간에 걸쳐 케플러의 법칙 전체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칠판은 아름답게 채워져 있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보다는 오히려 배울 수 없는 지식을 갈망했다.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설득하여 양 뇌의 해부 실험을 기획한 것이다. 학원 일정으로 바쁜 친구들을 설득하여 하교 후, 실험실에서 해부 실습을 진행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며 조용히 주먹 한 개 크기보다도 작은 양 뇌를 갈랐다. 너무나도 경이로웠다. 어떻게 우리의 논리와 이성, 직관과 감성, 희노애락이 이렇게 작고 축축한 물체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나는 당시 생명과학 담당이기도 하셨던 담임 선생님과 많은 면담과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답이 나오긴 커녕, 훨씬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지곤 했다. 부족한 식견을 넓히기 위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실비아 나사르의 《뷰티풀 마인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과 같은 책들을 읽었다. 프로이트를 통해 마음에 대한 분석적 상상의 지평을 넓혔고, 나사르를 통해 조현병을 앓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기구한 삶을 엿보았으며, 윌슨을 통해 유물론적 접근법-뇌과학, 신경생리학, 인공지능 등-에 대한 깊은 통찰2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운 좋게도, 3학기를 다닌 후 학과를 결정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아직 물리학과 생명과학 (혹은 의학) 중, 어떤 분야에서 내 질문을 탐구해야 할 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학기, 생물정보학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며, 통계적 모델링과 빅데이터 분석에 매료되었다. 그러던 중, 4년 만에 열린 한 물리학 수업3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수업은 5명 내외로 운영되었는데, 한국인 학부생은 나 혼자 뿐이었다. 아주 격렬한 물리학적 내용에 고군분투하며, 마음과 의식의 새로운 이론을 꿈꾸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1년 반의 유예 기간이 끝났을 땐, 나는 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수학을 전공하기로 택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무엇보다, 내 질문은 과학보다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과학적 지식 그 자체보다는 과학을 하는(만드는) 도구와 사고방식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 외에도, 신경과학, 심리학, 인공지능 등의 수많은 분야에서 마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만큼,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인드셋의 필요성에 깊게 공감한 탓도 있다. 수학과에 진학하며 수학적 사고와 이론의 형식적 전개방식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고, 동시에 마음의 과학을 만들기 위한 배경지식으로써 마음의 철학을 공부할 자질을 갖출 수 있었다. 수학을 공부한 후 놀랐던 사실은, 내게 철학의 분석적 텍스트가 정말 편하고 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점차 과학철학과 심리철학의 여러 논증의 우아함과 담백함에 깊이 매료되어 갔다. 내게 학부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단연 마음과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의 근본적인 수학적 형식과 마음 및 인공지능과 관련된 철학적 담론을 소개하고자 제작했던 “인공지능의 수학4” 및 “인공지능의 철학5” 대중 강의다. 한편, 나의 학사 학위 주제는 “인공적 신경망의 학습 과정에 대한 위상수학적 분석”으로, 가상적인 두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변화6 를 포착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졸업이 가까워질 때쯤, 사람의 마음-의식, 지각, 정서, 기억 등-과 관련된 문제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기술-사이버네틱스, 최적 제어 이론, 의사 결정 이론, 기계 학습, 인공지능 등-의 본질적인 구성과 현실적인 적용 사례에도 관심이 커져갔다. 신기하게도, 수학적 형식과 철학적 담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현실적인 기술의 불편한 이면과 윤리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 닿았다. 특히, 최근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는 대개 생명체의 작동 방식과 합치하지 않을7뿐만 아니라 실제로 비효율적8이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그것의 작동 방식과 원리를 이해하고 윤리적 문제를 고려해보려는 관심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전장에서 유의미하게 활용해 우위를 선점할지, 시장에서 상품화하여 소비를 가속화할지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수록, 내게 더 오기가 생겼다. 마음의 작동원리에 대한 답은 찾던 나는 인공지능의 본질적 구성과 기계의 구성 원리를 분석하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이어져 온 나의 그 끈질긴 질문이 마음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앞으로 기술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에 대한 숙고와 더 나은 인류로의 발전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으로도 이어진 셈이다.
이론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의 형식적인 공통점을 찾기 위해, 해외 유명 교수들의 저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마르첼로 마시미니의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와 줄리오 토노니의 《파이》부터,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 니콜라스 험프리의 《센티언스》, 그리고 아마리 슌이치의 《뇌, 마음, 인공지능》과 맥스 테크마크의 《라이프 3.0》까지. 수많은 도서를 읽으며 마음의 이론과 기계의 마음을 상상했다. 국내에서도 김주환의 《내면소통》이나 송강면, 안민숙의 《최면 바이블》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책에서 이론 신경과학의 분야에서 칼 프리스턴의 자유 에너지 원리Free Energy Principle나 능동 추론Active Inference을 언급했다. 프리스턴 교수는 분명 신경과학/의학 분야의 유명인사였지만, 놀랍게도 수학9과 물리학10에도 정통했으며, 더욱이 다양한 공학11의 접근법에 대해 깊은 통찰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여러 논문을 통해 그의 이론이 우아하고, 명쾌하며, 몸-마음-행동의 관계를 분석적으로 규명하는 근본적인 프레임워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유년 시절부터 이어져 온 질문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꿈꾸며, 또 동시에, 보다 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기계의 도래를 꿈꾸며 나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작업 또한 그 노력의 일환이다. 우연히, 의식을 주제로 신경과학 박사과정 중에 재학 중이신 한국의식과학회(KACS)의 장현우 회장님과 연락을 하며 새로운 번역 소식12을 접했다. 더욱이 과거 즐겁게 읽은 줄리오 토노니의 《파이》를 번역하신 정신과 전문의 려원기 선생님과 함께 번역하신다는 사실에 꼭 함께 참여해보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또 어려운 의식의 문제를 능동추론의 관점에서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 내게 비록 신경생리학이나 임상의학적 지식이 부족하지만, 능동추론에 입각한 수학적-물리학적-컴퓨터과학적 지식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혹여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무릅쓰고 양해를 구해보았다. 다행히도 공역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퇴근 후나 주말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번역 작업에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보람 찼다. 두 분께서 초안부터 워낙 훌륭히 번역해 주셨던 만큼 용어의 번역, 오탈자 검수, 번역 어투 등의 수정이 용이했다. 나의 뜸한 피드백과 복잡한 답변에 더 큰 열정과 의지를 보여주셨던 려원기, 장현우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잊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편, 나는 현재 의식과학과 인공지능의 미래를 꿈꾸기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운영해 보고 있다. 능동추론과 관련해 가장 큰 커뮤니티인 Active Inference Institute에서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한국인 최초로 자유 에너지 원리와 능동추론의 핵심 용어를 번역하는 Ontology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신경 계산Neural Computation 분야 및 최적 제어 이론 분야와 관련해 칼 프리스턴 교수와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이를 통해 해외 유학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도, 한국의식과학회를 통해 아래의 매니페스토를 갖는 “몸-마음-행동” 이니셔티브를 기획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크게 세 가지의 활동-책 읽기 모임, 이론 의식과학 모임, 논문읽기 모임-으로 구성된다. 그 중 이론 의식과학 모임은 능동 추론 이론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몸-마음-행동의 핵심 주제를 공부하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타 분야와의 발전 가능성을 상상해보며, 한국을 중심으로 앞으로 기술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에 대한 깊은 숙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인류로의 발전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시작되길 소망하는 바다.
고등적인 의식 활동은 우리가 스스로를 다른 생물종과 구분하게 하는 주요한 특징입니다. 그러나, 의식의 본질과 작동 원리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어려운 미스터리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마음-뇌-행동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의 시도는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수학/철학, 물리학/심리학, 컴퓨터과학/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도 및 전문가들이 모여 의식의 근본적인 이면을 분석 및 해체합니다. 이를 통해 도출한 분석 내용은 생물학과 철학의 질문과 관련 짓습니다.
우리는 의식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모임 및 컨텐츠 공유 등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또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최면-확장 현실-미래 인공지능-동물 의식-인공 감응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윤리적 문제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1: 대학 물리학 과정의 “고전역학” 과목에서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2: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6장 “마음”
3: 초대 한국계산뇌과학회 회장이셨던 김승환 물리학 교수님의 “비선형 동역학 및 카오스 이론”.
_당시엔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등을 읽으며 지냈던 기억이 있다.
4: “인공지능의 수학” 링크
5: “인공지능의 철학” 링크
6: 여기서 “구조”란 거시적인 위상 구조를 말한다.
**도넛이 머그컵과 동형(Homeomorphic)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7: 물론 생명체의 작동 원리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가 굳이 합치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다만, 그 둘의 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가 굉장히 적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다.
**제프리 힌튼 교수의 “The Forward-Forward Algorithm: Some Preliminary Investigations”의 1장 참고.
8: 아마리 슌이치의 《뇌, 마음, 인공지능》 참고.
**컴퓨터는 1시간 당 175 와트, 전구는 60와트를 소비하는데, 인간의 두뇌는 고작 12 와트다.
9: 정보이론과 통계학, 정보 기하학 등.
10: 고전역학과 통계역학 및 열역학, E. T. Jaynes의 주장 등.
11: 기계학습 분야의 통계적 학습 이론과 강화 학습 이론, 사이버네틱스 및 최적 제어 이론 등.
12: 장현우 회장님은 과거 유안 스콰이어스의 《Conscious Mind in the Physical World》, 안티 레본수오의 《Foundations of Consciousness》, 제럴드 에델만의 《A Universe of Consciousness》, 수전 블랙모어의 《Conversations on Consciousness》를 번역한 이력이 있다. 모두 읽어보았으며, 의식과 관련된 핵심 주제를 파악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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