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기, 결심
어제 (미국) 유학 가시는 선배들과의 면담을 통해 여러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선배들 모두 공대 대학원으로 진학하시기 때문에, 더 이론적인 연구에 흥미가 있는 나에게 적합할지는 모르겠으나,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몇 가지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탑 스쿨일수록, 입학생에 대한 교수님의 권한이 강하지 않다.
- 랭킹이 낮지만 대가가 있는 학교의 경우, 교수님의 재량이 크다.
- 자신의 스펙을 올리기 위해서는 CV 내 여러 활동을 채워야 하는데, 나에게는 “논문”이 유일하다.
- 영어/GRE 준비는 CV에 적을 논문의 학회 제출 시기가 지난 이후에 해도 된다.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선배들께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이 가장 궁금했다. 한 선배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누가 나에게 100억을 준다면 받지 않을 것인가? 누가 나에게 MIT 입학 자격을 준다면 거절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꿈의 불씨가 살아 있는 것이고, 그것을 평생 무시한 채 사는 것이야말로 고통이 아닐까?
최근 들어 연구소에서의 생활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나의 학문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내 기대와 맞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 같다. 같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직무를 유기하거나 태만한 경우는 그렇다 쳐도, 연구의 계획 의도와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무기력하게 과제를 수행하는 분위기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의 가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초에는 나의 잠재력을 키우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맡은 일과 주변의 평가를 돌아보면 나의 그릇과 잠재력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동기 형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떠올랐다. 단순한 물 한 잔이 편의점에서는 500원이더라도,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는 10,000원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나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벼룩 실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나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를 크게 인정해주는 환경에서 지내고 성장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한국의 연구소와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윈윈하고, 서로 행복하며,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이상적인 조직을 꿈꾸는 것은 환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꿈은 꿀 수 있지 않은가?
앎을 좋아하는 태도야말로 나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줄곧 세상의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밌었으며, 그 분야는 경제, 사회, 정치, 철학, 과학, 공학, 예술 전반을 아우른다. 사람들이 이뤄 온 거대한 현대 문명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걸까, 그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양뇌를 해부하며, 다음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으며, 그 다음엔 뇌과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해 관련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고 마음의 원리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런데, 과학의 영역에서 마음의 원리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걸 여러 번 경험하며 물리학과 수학,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복잡계와 그것이 지니는 놀라운 정보적 속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직까지도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관련 업무를 하며, 어떻게 세포 덩어리가 시공간을 이해하고, 감정을 느끼며, 기억과 환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나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고 삶이 풍부해지는 걸 보면, 나도 나 스스로가 신기하고 놀라운 것 같다.
다만, 이 분야가 수학이라는 나의 전공만으로 해결하기엔 진입 장벽이 꽤 높고, 더 다양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더욱이, 아직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철학의 범주에서 다뤄지는 질문인 만큼, 수학적 이론을 만들어 밝히기엔 그것의 재료가 될 현상에 대한 관찰 결과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최근 유독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설명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람의 마음에 대한 탐구는 연구를 통한 지식으로, 혹은 예술 작품으로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비슷한 관심사와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의 진가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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